후쿠시마에서 말하는 Vol.1 다카하시 미카코

피난 기간 중 저는 후쿠시마에 있었고, 그 후에 센다이의 딸 집에서 기거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오염을 피하기 위해 저는 비닐 우비를 입고, 마스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이 있어 센다이의 대학병원에 갔을 때 미나미소마에서 온 사람은 크리닝 검사를 받아 주십시오 라는 게시글이 있어, 가족과 함께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제 구두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선이 나와 즉시 몰수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구두는 2,3일 딸의 아파트 현관에 있었습니다. 딸의 아이는 1살. 가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가족의 분위기는 일순 얼어붙었습니다. 그 때의 복잡한 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 탓은 아니지만 제가 방사능을 가지고 왔다. 미안하다는 감정.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우리는 지금 미나미소마에서 평소처럼 살고 있습니다. 방사능 양은 평균의 0.4마이크로 시벨트(2013년 현재). 0.1~0.2정도면 밖에서 아이들을 놀려도 된다는 감각입니다.
체내 방사능양 측정기도 정비되었고, 먹거리에서도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20킬로 권내의 입출이 허용된 뒤로는 오다카의 사람들은 가설주택에서 자택으로 왕래하게 되었고, 마을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방사능은 적은 양이라고 하더라도 존재하며 세포에 영향을 주는 것도 있다는 것을 모두가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고, 정신적인 피로가 병이 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이번 경험으로, 인간은 어떤 곳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에네르기를 가지고 있고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간 기즈나 (한국의 정과 같은 끈끈한 유대관계- 역자 주)가 끊어져 버렸을 때에는 더없이 약한 존재가 됩니다. 20킬로권이 해제되어 자택으로 돌아 온 남성이, 다시 원래대로는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비관해 자살을 했습니다. 혼자 고민할 때 지탱하게 해 줄 기즈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듣고 고민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틈만나면 방사능 이야기를 하고, 동경전력회사에 화를 내고, 정부는 아무 것도 해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을 아이들은 진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많이 부모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부모를 괴롭히는 것을 순수하게 미워합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아이들에게 일본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게다가 지금 일본에는 막연한 공허함이 확산되는 듯 합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주는 것 만으로도 좋다고, 자신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어떤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닌, 양보하고 응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2012년3월에 야외에서 놀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실내 놀이터를 만들어 왔습니다. 체육관에는 받아 온 빈 상자 천지. 그 때 아이들이 놀 놀이장소를 만드는 것에 첫 스위치를 켠 것은 아빠들. 아이들을 살게 할 집을 만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길을 만들었습니다. 집과 길이 연결되고 여자아이들은 가게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