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말하는 Vol.2 타나카 덕운스님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후쿠시마의 현실

2011년 3월 11일 이후에도 ‘相馬野馬追(소마말몰이)’ 행사는 규모를 축소해 가면서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1000년 이상 이어져내려오는 행사를 중단하고 싶지않다는 주민들의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2012년 추석 때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양을 하러 모였습니다. 그 때 부엌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엄청난 쥐들의 숫자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절이 허물어진 상태였고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로 2년이 지났기 때문에 보름달인 밤에는 쥐들이 집 안에 넘쳐날 정도로 많았기에 집이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절에 돌아 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주인이 돌아온 것을 알려주기 위해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쥐를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문제는 방사능 안전 기준치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과 음식도 물론 높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100베크렐이라는 수치는 피폭사고 전의 기준일 경우일 때의 방사성 폐기물의 최소 기준치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이나 식품은 100베크렐까지는 괜찮다고 합니다. 이는 새로운 기준을 알리게 되면 혼란이 생기니까 그저 사태의 진실을 덮고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는 현실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수치가 안전 기준치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든지 후쿠시마에 살고 있든지 어느 상황이라도 피해자 모두에게 무척 힘든 생활입니다.
제가 경험한 어려움은 福井(후쿠이)와 福島(후쿠시마)에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생활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받게될 피폭의 위험을 외면한 채 福島(후쿠시마)에 돌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말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아내는 울었습니다. 아이들도 울었습니다. “전학하고 싶지 않다”고.
2년이 지나자 아이들은 벌써 피난처인 후쿠이 사투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수많은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강요 당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피해 배상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통해 피난했을 때 발생한 비용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해 몇번이나 도쿄전력과 대화를 나누고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늘 접수를 거부 당한 것이 현실입니다. 4번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반동안 심사는 커녕 접수조차 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피난시 발생한 비용에 관한 모든 정황 증거를 내놓으라고 도쿄전력 측은 말하고있지만 이것은 본래 도쿄전력 측에 책임이 있습니다.

원래 방사선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기준치가 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안전기준치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피폭선량 한도까지는 괜찮다고 피해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정부가 가정한 기준치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강제로 부당하게 만들어진 기준치를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ICRP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은 원자력 에너지를 추진하는 측이며 원자력 산업 보호를 위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WHO(세계보건기구) 조차도 원자력 에너지를 추진하는 측 산하에 있으며 객관적인 제3자 혹은 공정한 학술기관이 아닙니다. 이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추진하는 측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피폭 당하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원자력 발전소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福島(후쿠시마)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부흥’하고자 복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무너져 내린 집들을 자원봉사자 분들이 고쳐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비록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원래는 ‘野馬追(말몰이)’ 축제가 열릴 때 축제를 위한 옷을 입고 말을 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村上(무라카미)의 어촌 지역에서는 민속 춤인 ‘모내기 춤’ 을 계승해나가는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그곳에는 72세대가 모여 살고 있었는데 쓰나미로 인해 62명이 사망하고 현재는 마을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 축제를 계승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축제를 계기로 삼아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이죠. 이럴때일수록 축제를 통해 천국과 극락세계와 같이 모두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발밑으로 눈을 돌리면 들판에 있는 화초들의 모습이 기형으로 변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민들레 꽃은 서너개의 꽃들이 한 줄기에 피어 있기도 하고, 꽃 줄기열개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서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환경부에 전하고 싶은 문제입니다. 그들은 비료과다 섭취라고 말하고 있지만 골프공 만한 크기의 토끼풀꽃하며, 머리가 기형인 올챙이도 발견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 대수롭지 않은 일상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온 식구들이 함께 사는 것, 일상 생활 속에서 일상의 인사를 나누고, 아는 얼굴이 그곳에 함께하는 것, 아는 사람들과 지극히 당연한 일상생활을 하는것이 얼마나 고맙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 가슴에 사무치도록 느낀 2년 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일어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더욱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것, 아이들을 위해 5년 혹은 10년 후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살아나가야 할 사람들에게 부담을 안기는 유산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과거를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을 포함해서 모두가 ‘피해자’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저곳의 방사선량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도쿄전력 측에서도 측정했는데 방사선량은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福島(후쿠시마)는 확실히 매우 높고 절의 흙은 1kg당 800베크렐, 절 지붕의 빗물받이 통 속의 수치는 10만 베크렐이었습니다. 仙台市(센다이) 시내에서는 1,000베크렐이 측정된 곳도 있었고 東京都(도쿄도) 시내에서도 300~400베크렐인 곳도 있었습니다. 2012년의 기록이지만 빗물이 고여있는 곳에서는 도쿄역에서 조차도 방사선량이 대단히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 방사선에 노출되게 되었고 안심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한편 이제까지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바라며 살아왔고, 그리고 그런 생활을 누리고 온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 임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이며 또 동시에 ‘가해자’ 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반성하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면 좋은가를 생각하는 것, 여전히 아늑한 생활 속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문하며 스스로 반성하면서, 삶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